일본 영화는 조용하지만 깊은 감정을 건드리는 데 탁월한 힘이 있습니다. 특히 자아를 탐색하는 여정을 그릴 때, 일본 영화는 극적인 사건보다는 일상 속 작은 변화와 내면의 흔들림에 집중하죠. 그래서인지 일본 영화 속 자아 찾기는 폭풍이 아니라 잔잔한 호수처럼, 오래도록 마음에 남습니다. 가족과의 관계, 상실의 감정, 변화를 받아들이는 시간—그 모든 것이 일본 특유의 섬세한 시선으로 담겨 있을 때, 우리는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보는 듯한 공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번 글에서는 일본 영화 속에서 자아를 찾아가는 인물들의 여정을 따라가며, 그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변화하는지를 천천히 들여다보겠습니다.
상실과 재회의 시간을 통해 자기 자신을 이해하게 되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そして父になる)’는 자아와 정체성의 문제를 가족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섬세하게 비춥니다. 엘리트 회사원 료타는 성공한 삶을 살고 있지만, 병원에서 아들이 바뀌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의 아들은 사실 다른 부부의 아이였고, 친자가 따로 있었다는 것. 이 설정은 단순한 가족 드라마를 넘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으로 확장됩니다. 료타는 생물학적 아버지가 되는 것과 실제로 아이를 길러온 관계 속에서의 아버지됨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그리고 그 갈등은 곧 자신의 삶에 대한 질문으로 번져갑니다. 그는 정말 아버지로서 역할을 잘 해왔는가? 아버지가 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어떤 모습인가?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그는 처음으로 진짜 자아를 마주하게 됩니다. 고레에다 감독은 빠른 결론을 내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정을 꾹 눌러 담은 듯한 인물들의 눈빛, 아이와 함께하는 작은 순간들을 통해 관객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유도하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자아 찾기라는 주제를 부모-자식 관계라는 가장 현실적인 틀 안에서 풀어낸 작품입니다. 상실은 단지 누군가를 잃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부가 흔들리는 과정이며, 재회는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자기 이해로 가는 또 하나의 문이라는 것을 조용히 말해줍니다.
잃어버린 일상 속에서 자신을 다시 발견하는 ‘걸어도 걸어도’
‘걸어도 걸어도(歩いても 歩いても)’ 역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로, 가족이라는 테마를 통해 자아와 관계의 미묘한 균열을 섬세하게 포착합니다. 이 영화는 어느 여름날, 한 가족이 모여 돌아가신 큰아들을 기리는 하루 동안 벌어지는 아주 조용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하루가 지나면서, 각 인물들이 오랜 시간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감정들이 조심스럽게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주인공 료타는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둘째 아들이자, 세상 어디에서도 중심이 되어본 적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형의 빈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는 무언의 압박과, 아버지의 냉담함, 어머니의 지나친 현실감 사이에서 어른이 된 자신이 여전히 방황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는 겉으로는 무심한 듯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나는 과연 괜찮은 사람인가?’라는 깊은 질문이 자리하고 있죠. 이 영화는 변화가 대단한 사건으로 찾아오지 않는다는 걸 보여줍니다. 어쩌면 자아를 찾는 과정은 이렇게 무심한 하루 속에서, 평범한 대화와 침묵, 식사 시간과 걷는 발걸음 사이에서 조금씩 깨어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걸어도 걸어도’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완전히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인지, 가족과의 관계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자신을 잃기도 하고 다시 찾기도 하는지를. 이 영화는 그래서 조용하지만, 자아에 대해 말하는 영화들 중에서도 가장 현실적이고, 또 가장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입니다.
비현실적인 세계를 통해 오히려 현실의 나를 마주하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자아 탐색이라는 주제를 애니메이션의 형식을 통해 환상적으로 풀어낸 작품도 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千と千尋の神隠し)’은 단순한 어린이용 판타지로 보이지만, 사실은 정체성과 자아에 대한 강렬한 은유로 가득한 성장 서사입니다. 10살 소녀 치히로는 부모와 함께 이사 도중 이상한 세계로 들어가 부모가 돼지로 변하는 사건을 겪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마저 잃고, ‘센’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야 하는 상황 속에서, 치히로는 무력한 아이에서 점차 자립적인 존재로 성장해 갑니다. 여기서 이름을 잃는다는 것은 곧 자아의 붕괴를 의미하며, 그 이름을 되찾는 과정은 곧 정체성을 회복하는 여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신비롭고 환상적이지만, 그 안에서 치히로가 겪는 감정은 아주 현실적입니다. 낯선 곳에서 겪는 두려움, 책임감을 배우는 순간, 타인을 돕고 신뢰를 쌓는 과정—all of these reflect a child's journey to becoming herself. 미야자키 감독은 이 모든 것을 아름다운 색채와 시적인 상징으로 담아내며, 치히로가 진정한 자아를 회복하는 여정을 감동적으로 완성합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말합니다. 진짜 나를 찾는 여정은 반드시 현실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며, 때로는 환상 속에서 오히려 더 선명하게 보일 수 있다고. 그리고 진짜 자아란, 누군가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고 되찾아야 하는 것이라고.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각자의 자아를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이 영화는, 자아 찾기라는 주제의 보석 같은 해석이 되어줍니다.
일본 영화 속 자아 찾기 여정은 극적인 사건보다 섬세한 감정의 흐름을 따라갑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부모됨을 통해 정체성을 되묻고, ‘걸어도 걸어도’는 일상의 틈에서 자기 존재를 천천히 확인하게 하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환상의 세계를 통해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자아를 마주하게 합니다. 이 영화들을 따라가다 보면, 자아란 거창하게 찾는 것이 아니라, 작고 사소한 감정과 경험 속에서 조금씩 다듬어지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지금 당신도 그 여정의 한가운데에 있다면, 이 영화들이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어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