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고 과장된 스타일이 각광받는 시대에도, 여전히 ‘덜어냄’의 미학은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일본 영화 속 패션은 그런 미니멀리즘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단순한 실루엣, 무채색에 가까운 톤, 그리고 기능성과 감성을 동시에 품은 의상들은 일본 영화가 가진 고유한 분위기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간결함 속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줍니다. 이번 글에서는 일본 영화 속에서 만나볼 수 있는 미니멀 패션 스타일을 중심으로, 일상적이지만 정제된, 정갈하면서도 따뜻한 감성의 룩을 소개합니다. 옷을 입는 방식만으로도 삶의 태도를 전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들은 조용히 말해줍니다.
기능성과 감정을 동시에 담은 일상형 미니멀 룩
‘남쪽으로 튀어!(南極料理人, The Chef of South Polar)’는 일본 영화 특유의 잔잔한 유머와 인간관계를 섬세하게 풀어내는 작품이지만, 스타일링 면에서도 주목할 만한 포인트가 많습니다. 극 중 남극 기지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은 모두 ‘실용’을 기반으로 옷을 입습니다. 복잡한 스타일링은 없지만, 그 안에서 보여지는 무채색 패딩, 니트, 면 셔츠, 투박하지만 정돈된 실루엣은 오히려 큰 인상을 남깁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스타일링 미덕은 ‘생활감’입니다. 실제로 매일 입을 수 있을 법한 옷들이지만, 잘 정리된 색감과 조용한 질감이 묘한 안정감을 줍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 니시무라가 주로 입는 그레이톤 스웨터나 베이지 셔츠는 밝지도 어둡지도 않으면서, 인물의 내성적이고 다정한 성격을 은근히 드러내죠. 레이어드도 지나치지 않고, 겹쳐 입는 방식이나 깃의 위치, 소매를 걷는 동작까지도 스타일의 일부가 되어 관객에게 스며듭니다. 남극이라는 배경은 겉으로 보면 단조롭지만, 그 안에서 보여지는 인물들의 조용한 스타일은 오히려 감정의 깊이를 더욱 부각시킵니다. 스타일링이 소리를 내지 않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는 이유죠. ‘남쪽으로 튀어!’는 미니멀 패션이 어떻게 실용성과 감정의 교차점에서 완성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있어 보이기’보다 ‘스며들기’를 선택한 이들의 옷차림은, 오늘날 미니멀 패션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훌륭한 참고서가 되어줄 것입니다.
미니멀한 감성과 여유로 정갈함을 담다
‘카모메 식당(かもめ食堂, Kamome Diner)’은 일본 영화 중에서도 미니멀리즘을 가장 정제된 방식으로 구현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 영화는 일본 여성 사치에가 핀란드 헬싱키에 작은 식당을 열고, 낯선 땅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소소한 일상을 이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의 분위기 자체가 담백하고 조용하지만, 그 조용함 속에 담긴 감정의 농도는 깊고 진합니다. 그리고 그 정서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의상입니다. 사치에는 거의 전 장면에서 화려한 패턴이나 과감한 연출 없이, 심플하고 실용적인 옷차림을 유지합니다. 면 소재의 원피스, 무채색 린넨 셔츠, 두껍지 않은 니트류, 깔끔한 앞치마까지—하나하나의 아이템이 단아하면서도 사용자의 생활을 고려한 실용성을 가지고 있죠. 주조색은 주로 인디고, 그레이, 네이비, 화이트 계열이며, 계절과 조화를 이루는 컬러 구성 덕분에 전체적인 톤이 편안하게 이어집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정돈된 자연스러움’입니다. 이는 일본 미니멀 스타일의 핵심이기도 하죠. 절제된 컬러, 군더더기 없는 실루엣, 그리고 지나치지 않는 악세서리 사용까지. 무엇보다 사치에가 요리를 하거나 커피를 내릴 때, 그 동작들과 옷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맞물리며 ‘생활 속 스타일’이란 것이 단지 꾸미는 것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라는 걸 알려줍니다. ‘카모메 식당’은 패션 그 자체로 큰소리 내지 않지만, 화면 전체를 편안하게 감싸는 미학을 보여줍니다. 일상에서 쉽게 따라 할 수 있으면서도, 매번 입을 때마다 나 자신에게 안정감을 주는 옷. 그것이 이 영화가 말하는 미니멀리즘이고, 지금 우리의 옷장에도 필요한 감성입니다.
옷으로 내면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절제의 미학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そして父になる)’는 가족과 정체성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지만, 그만큼 스타일링에서도 감정과 내면의 흐름을 간결하게 드러냅니다. 특히 주인공 료타의 옷차림은 일본식 미니멀 패션의 정수를 보여주면서도, 그가 가진 삶의 태도와 내면의 복잡성을 시각적으로 담아냅니다. 료타는 전형적인 도시 남성으로, 블랙, 그레이, 네이비 등 한두 톤을 중심으로 정제된 스타일을 유지합니다. 셔츠에 재킷, 슬랙스를 매치한 단순한 수트 스타일이 대부분이지만, 그의 완고함과 단절된 감정, 정형화된 사고를 그대로 반영하는 룩입니다. 이처럼 영화 속 스타일링은 단지 겉모습이 아니라 인물의 내면 구조를 간결하게 그려주는 장치로 기능하죠. 또한 그의 아내는 좀 더 따뜻하고 부드러운 색감을 가진 옷차림을 유지하며, 가족 안에서의 감정적 균형을 시각적으로 형성합니다. 그녀는 베이지 톤 니트, 린넨 블라우스, 심플한 원피스 등을 입으며, 인물의 정서적 섬세함과 대조적인 료타의 단단함을 더욱 강조하게 됩니다. 영화 전체적으로 과감한 스타일은 등장하지 않지만, 그 안에 담긴 ‘디테일의 절제’는 감탄을 자아냅니다. 단정한 핏, 과하지 않은 액세서리, 어깨선이나 밑단의 미묘한 정렬감 등은 ‘입는 방식’ 자체에 성실함이 깃들어 있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패션을 통해 삶의 태도를 말합니다. 미니멀한 스타일은 단순히 꾸미지 않음이 아니라, 삶을 정제하고 내면을 정직하게 마주하는 방식일 수 있다는 것. 이 영화는 그런 미니멀리즘의 철학을 조용하지만 강하게 전달하는 작품이며,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스타일 속에서 진정한 감정의 무게를 담아냅니다.
일본 영화 속 미니멀 패션은 말수가 적지만, 많은 것을 전달합니다. ‘남쪽으로 튀어!’는 실용 속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스타일을, ‘카모메 식당’은 일상과 여백 속에 스며든 정갈한 감성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절제된 옷차림을 통해 내면의 충돌과 성장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모두 미니멀 패션이 단지 ‘단순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매일 아침 어떤 옷을 입을지를 고민할 때, 이 영화들이 조용히 곁에 있어준다면,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그러나 더 깊이 있는 감성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